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우 티코 (문단 편집) == 상세 == || [[파일:OBRFIBA.jpg|width=100%]] || || 초기형 티코 (일명 민자 티코) || 1991년부터 국내 유일의 경차로서 [[창원시]]의 대우국민차 공장(현재의 [[한국GM]] 창원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했는데, 출시 목표 가격은 200만 원 대였으나, 물가 인상 폭과 부품 단가 문제로 실제로는 3~4백만 원 대에 판매되었다.[* 소비자 물가 지수로 계산해보면 2017년 기준 700만 원 정도의 가격이다. 당시 최하 트림이 상징적으로 290만 원에 판매되긴 했지만, 에어컨과 앞 좌석 파워 윈도우도 없는, 그야말로 굴러가기만 하는 수준의 장비였다. 앞좌석 파워윈도우가 없다는 건, 정말로 조수석에 조수가 없으면 주행 중에 오른쪽 차로 운전자가 뭐라고 말해도 혼자서 창문을 열고 대응할 수 없단 뜻이다. 의외로 앞좌석 수동 윈도우는 [[쉐보레 스파크]]에서도 2020년 현재 깡통 트림으로 생존하고 있고, [[기아 모닝]]은 4세대 페이스리프트 전인 2020년까지 깡통 트림으로 살아 남았다.][* 출시 목표가를 1,000만원 이하로 잡았지만, 실제 풀옵션 사양의 가격은 2,000만원 가량에 육박하는 [[현대 캐스퍼]]와도 비슷하게 보인다. 다만, 캐스퍼는 티코와 다르게 편의 및 안전장비를 상당히 투입한 차량이다. 또한, 정부의 국민차 육성 정책이라는 목표 하에 만들어진 티코와 [[광주형 일자리]] 명목으로 생산되는 캐스퍼 역시 정부의 정책에 의해 개발된 차량으로 볼 수 있다.]그래도 당시로서는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다.[* 티코의 출시에 자극을 받은 [[기아자동차]]에서 [[기아 프라이드|프라이드]]의 깡통 트림을 팝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내놓았는데, 그래도 당시에 80만 원 이상 가격이 비쌌다.] || [[파일:gdanSHY.jpg|width=100%]] || || 베이스 모델인 [[스즈키 알토]] 3세대 || 원형인 [[스즈키 알토]] 3세대를 거의 외형 디자인의 변경 없이 들여와 생산한 만큼 엔진도 스즈키의 엔진을 그대로 가져왔다. 당시 스즈키의 경차 엔진 가운데 수출용 버전인 800cc급인 F8B(일명 헬리오스 엔진)의 개량형인 F8C를 얹어 41마력을 냈다. 너무 빈약한 출력[* 동세대는 아니지만 [[2014년]]을 기준으로 경차의 [[자연흡기]] 방식 DOHC 엔진은 70마력 후반대 수준이고, 심지어 [[과급기|터보 차저]]를 얹으면 106마력까지도 나온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공차 중량이 600kg대 초반, 총 중량도 1톤을 밑도는 가벼움이 시내 주행에서는 가속력 부족을 제외한 부분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게 만들었다. 티코에 들어간 헬리오스 엔진은 이후 대우자동차에서 자체적인 개량을 거쳐 [[GM대우 마티즈|마티즈 1/2]]의 F8CV, 그리고 올 뉴 마티즈의 A08S3로 이어졌다. F8C의 후속 엔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대우 M-TEC 엔진]] 참조. 최대한 원가를 줄여야 했기에 편의 기능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미 이 시기에는 카뷰레터 방식이 아닌 [[ECU]]를 활용한 전자 제어 방식(MPI) 엔진이 등장했지만[* 물론 1990년대 초반까지는 시장의 주류까지는 아니었다. [[현대자동차]] 조차 [[현대 엑셀]]의 상위 트림에만 MPI 방식 엔진을 적용했고, MPI 엔진을 전체에 적용한 것은 [[현대 엑센트]] 이후이다.] 카뷰레터 방식을 고집했고, 파워 스티어링이나 가죽 시트, 에어백[* 에어백이 상위 트림에만 장착되는 옵션 사양이 아닌 일반적으로 장착되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속 차종인 마티즈 1세대 후기형인 마티즈 2부터였다.] 따위는 옵션사양으로도 없었다. 당시 검증된 원가 절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기술만으로 만든 결과 최소한의 성능과 저렴한 가격은 얻을 수 있었지만 운전의 편리함이나 안전에 대해서는 매우 불리했다. 파워 스티어링과 MPI 엔진이 들어간 것은 다음 세대 모델인 마티즈부터였다.[* 차량 무게가 매우 가벼웠기 때문에 일반적인 남성들의 경우에는 파워 스티어링이 굳이 필요하지 않기도 했다. 참고로 티코에 3단 자동변속기([[아이신|Aisin Seki]] 사의 제품을 수입) 모델은 출시 이듬해인 1992년 6월 25일에 계약을 시작하였고, 동년 6월 29일부터 자동변속기 모델이 출고되었다. 당시 티코에 3단 자동변속기 옵션 가격은 60만 5천 원이었다.[[https://ldriver.blog.me/221550898715|#1]][[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62100329106010&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2-06-21&officeId=00032&pageNo=6&printNo=14442&publishType=00010|#2]]] 그러면서 오디오는 대우전자 제품을 쓴 덕분에 차급에 비해 쓸데없이 성능이 좋았는데, 상위 버전에는 동시대 엑셀에도 안 달아주던 코엑셜 스피커를 달아 차급에 비해 음질이 깨끗한 편이었다. '작은 고추가 매운' 이미지의 프라이드와는 다르게 티코의 경우 연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티코 시리즈]]라는 유머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하지만 새롭고 저렴한 차에 사람들이 열광하지는 않았는데, 1990년대 초반에는 위의 '티코 시리즈'와 더불어 우스개거리로 전락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대접도 썩 좋지 못했다.[* 사실 티코란 이름 자체는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선 매우 유명하지만, 정작 자신의 차로서 티코를 운전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프라이드만 해도 180대인 사람은 머리가 거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작고, 고속도로에선 100km만 넘어도 소음이 심한데, 티코는 그 속도로 달리면 차체가 휘청거리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당시에 티코를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 사이에선 "작고 귀엽게 생긴 차"의 대명사로 마스코트처럼 많이 입에 오르내렸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티코를 사려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판매량 역시 폭발적인 인기라고 하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자가용 승용차 보유가 부유층의 상징이었다는 점 때문에 자동차 자체를 부와 명예의 수단으로 보고 큰차 선호 사상에 찌든 사람들이 외면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시기적인 문제 역시 외면하기 어렵다. 티코가 처음 선보인 1991년에만 해도 아직 1가족 1승용차조차 갈 길이 멀어 그 전해에 겨우 본격적인 준중형의 시작인 [[현대 엘란트라]]가 나오고 중형차의 전설인 [[현대 쏘나타]]는 이제 갓 마이카 세대의 차량 교체 대상으로 관심을 끌던 시절이다. 또한 지금처럼 주택 구매의 난이도가 높아져 아예 이를 포기하고 자신과 가족의 삶을 즐기기 위해 차를 구매하는 사람도 적어 여유 자금은 대부분 주택 구매를 위한 저축으로 돌리는 것이 당연했던 때다.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은 있던 사람들은 여러 인원이 여유있게 타기 어려운 경차를 가족용 차량[* 이 당시는 [[현대 그레이스]]나 [[기아 베스타]] 위주였다.]으로 신규 구매 또는 종전 차량을 교체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며, 그나마 경차 규격을 정할 때 정부나 대우국민차가 기대했던 젊은 부부나 미혼 직장인은 결혼 및 주택 구매를 위한 저축에 바빴거나, 경제력이 있더라도 사내 주차 공간이나 상사의 눈치 등으로 차량을 운용하는 것이 어려웠다. 당시 상황은 세컨드 카 문화가 있기 전이라서 경차의 설 자리가 없었던 것. 경차가 많이 보급된 지금도 경차를 퍼스트 카로 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미 자신의 차를 가지고 있거나 많은 차를 접해본 사람들의 눈에 경차는 부실하고 빈약한 값만 싼 이름만 차에 불과했으니 사회적인 대접이 좋지 못했으며, 패밀리카로서의 한계가 명확한 경차는 처음 노렸던 소비자 층에게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에 가족이 늘었을 때까지 꾸준히 탈만한 확장성을 가지지는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도 소비자에게는 부족해 보였다. || [[파일:WgtnbRJ.jpg|width=100%]] || || 후기형 티코 SX (일명 '''"슈퍼 티코"''') || 그렇게 지지부진하게 팔리던 티코가 인기를 끈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였다. IMF 직전의 거품 경제에 각 가구의 구매력이 몇 년 전보다는 나아졌고, 1가구 2차량 중과세 제도가 경차에게 적용하지 않게 하면서 가족의 세컨드 카 또는 솔로들의 개인용 차량으로 조금씩 주목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IMF가 터지면서 사회 전체가 움츠러들고, 최대한 저렴하고 실속 있는 구매 패턴이 미덕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서 뒤늦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공장 근로자의 증언에 의하면, 출시 초기에는 할 일이 없어서 제초 작업 같은 것으로 시간을 때웠지만 1990년대 후반에는 시간당 36대 짜리 라인에서 48대 씩 뽑은 전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출시 초기의 '싸기만 한 깡통차'의 컨셉에서 벗어나서 조금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꼭 필요한 편의 장치가 추가된 것도 한 몫 했다. 뒷좌석 파워 윈도우 같은 것은 초기 모델에는 옵션으로도 없었다. 심지어 기본형 모델의 경우 앞좌석 윈도우까지 100% 수동 윈도우였다. 1998년 대우자동차에서 후속작인 마티즈 출시 이후에도 생산되다가 2000년에 내수 판매를 중단하였으며, 이후 2001년 초까지 수출을 위한 생산을 지속했다. ||[youtube(RSiQWyy5hpI)]|| || CF(김혜수 편) || CF만큼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대표적인 모델로 [[김혜수]]가 있었는데, 특히 '[[한지붕 세가족]]' 에서 신혼 부부로 같이 열연한 이영범과 찍은 CF가 가장 유명하다. 아내 김혜수가 회사 앞까지 데려다 주고 [[이영범]]이 내리려 할 때 '''"손님, 차비 주셔야죠?"''' 라는 멘트를 하자 이영범은 김혜수의 볼에 '쪽'. 아직도 이 CF를 기억하는 구세대들이 많을 정도로 당시 이를 따라하는 신혼부부가 많았을 정도로 유행이었으며, [[최불암 시리즈]]에서도 [[최불암]]이 택시를 타고 내리면서 이를 패러디했다. 참고로 원형인 스즈키 알토는 여러번의 풀 모델 체인지를 거쳐 계속 생산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